업무 시작 전 아침에 한국경제신문을 펼쳤다. A31면, 김정태 수석논설위원의 칼럼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K반도체가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무협지 비유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별 볼 일 없는 문파가 우연히 절세 무공 비급을 얻었는데, 그걸 지키지 못하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고수들에게 뜯기다가 결국 멸문한다는 이야기. 초격차 K반도체가 지금 그 비급을 손에 쥔 문파라는 비유였다.
칼럼의 결론은 명확했다. 노조는 성과급을 챙기고, 정치권은 횡재세를 걷으려 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역 안배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 자기 배에 올라타 노를 젓겠다는 얼치기 사공들부터 하선시켜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가 미·일 반도체 협정과 자만심 속에 무너진 걸 반면교사로 삼자는 대목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칼럼을 읽으면서 한 이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창신메모리, CXMT다. 요즘 뉴스와 라디오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다. 칼럼도 짧게 다뤘지만 나는 이 회사가 정확히 어떤 위협이고, 김정태 위원이 말한 '내부의 자만'이라는 리스크와는 별개로 외부에서 다가오는 리스크가 실제로 얼마나 큰지를 직접 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파다 보니 이 칼럼이 놓친, 혹은 지면 한 편에는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됐다. 반도체주만 가는 장세 속에서 참지 못하고 삼성전자를 매수했고, 지금은 손실을 보고 있는 반도체 주주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1. 매출이 1년 만에 700% 뛴 회사
숫자부터 확인했다. CXMT는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 본사를 둔 D램 전문 기업이다. 나무위키와 위키백과 항목을 대조해보니 2026년 1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점유율이 3%에서 8%로 뛰었고, 세계 순위로도 이미 4위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다음이다. 지난달 상하이거래소 커촹반에 상장했는데, 상장 첫날 시가총액이 3조28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708조 원을 기록하며 중국 본토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는 서울신문 보도를 봤다.
더 놀라운 숫자는 따로 있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인용한 해외 매체 기사를 보니, CXMT는 지난 10년간 누적 약 50억 달러 적자를 냈던 회사인데 매출이 2025년에서 2026년 사이 700% 폭증하면서 2026년 1분기 한 분기 매출만 75억 달러를 찍었다고 한다. 노무라는 CXMT 목표주가가 지금보다 135% 더 오를 수 있다고 봤다는데, 동시에 지금 주가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1600배가 넘는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나는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하나는 "이 정도 성장 속도라면 위협이 과장이 아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PER 1600배는 누가 봐도 버블 신호다"라는 것이다. CXMT를 순수한 산업 경쟁자로만 볼 게 아니라, 지금 중국 증시에서 벌어지는 유동성 랠리의 최선봉에 선 종목으로도 같이 봐야 한다는 뜻이다.
2. 상장 첫날,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같이 떨어졌다
이 부분이 나한테는 가장 실감 나는 팩트였다. CXMT가 상하이에서 거래를 시작한 날, AI 메모리 삼두마차로 불리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미국 마이크론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는 외신 보도를 확인했다. 시장은 이미 CXMT를 "언젠가 올 위협"이 아니라 "지금 가격에 반영해야 할 변수"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칼럼이 경계하라고 한 '내부의 자만'과는 별개로, 시장은 벌써 외부 변수에 반응하고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삼성전자도 그 하락에 같이 묶였을 걸 생각하면, 이건 남 얘기가 아니라 내 계좌 얘기였다.
3. 40년 전에도 이런 협정이 있었다 — 그런데 이번엔 입장이 다르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자는 대목을 읽고, 이 역사를 조금 더 깊이 파봤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칼럼과 조금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 나왔다.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은 단순히 일본이 자만해서 무너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국이 일본에 외국산(주로 미국·한국산) 반도체의 자국 시장 점유율을 강제로 끌어올리도록 압박한 통상 협정이었다.
이 협정이 1996년 종결될 때쯤 일본 반도체는 이미 회생 불가능한 상태였고, 엘피다 같은 전방 기업들은 결국 파산했다. 그리고 나무위키 서술에 따르면 이때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본 게 바로 삼성전자였다. 미국과 일본 기업의 기술 원조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한국 기업들이 이 틈을 타고 메모리 반도체 정상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즉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외국 정부의 통상 압박에 의한 자국 산업 몰락' 시나리오는 사실 40년 전에 이미 한 번 벌어졌던 일이고, 그때 몰락한 쪽 옆에서 지금의 승자가 자라났다.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지금 미국이 CXMT를 견제하기 위해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흐름은, 40년 전 미국이 일본을 눌러 한국을 키운 구도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다만 이번엔 우리가 그때의 '수혜자 한국'이 아니라 견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경쟁자 일본'의 자리에 동시에 서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중국 반도체를 누르고 싶어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가격 결정력이나 시장 지위를 무조건 보장해주는 우군도 아니라는 뜻이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이번엔 우리가 어느 배역을 맡을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4. 최태원의 경고는 칼럼과 결이 달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발언도 걸렸다. 칼럼은 그가 "가격이 오르면 지정학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걱정했다고 짧게 인용했는데, 이 발언의 원문 맥락을 찾아보니 칼럼이 준 인상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최 회장은 지난달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내년 AI 반도체 수요가 올해보다 60~100% 늘어날 텐데 공급은 거의 늘지 않아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수급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고가격이 지속되면 물가 전반을 밀어 올리는 '칩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그 결과 시장 자체가 축소되면서 한국 반도체가 지정학적 타격을 입을 위험이 커진다고 진단했다.
이건 칼럼이 프레임한 것처럼 '떼돈 벌다가 눈치 보는 소리'가 아니라, 마진율을 낮추더라도 생산 스케일을 빠르게 키워 가격을 안정시키는 게 산업의 생명줄이라는 정반대 방향의 조언이었다. 즉 최 회장이 경계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정치권의 횡재세나 노조 파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 스스로 가격을 너무 높게 방치해서 세계 각국이 CXMT 같은 대안을 진지하게 찾도록 만드는 상황이었다. 칼럼과 최 회장의 발언을 나란히 놓고 보니, '자만'의 실체가 정치적 자만인지 산업적 자만인지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5. 미국도 CXMT를 해법으로 보지 않는다
크리스 밀러라는 이름도 칼럼에 짧게만 스쳐 지나갔는데, 그가 몸담은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 홈페이지에서 같은 취지의 원문 칼럼을 찾을 수 있었다. 제목부터 단호했다. "중국은 미국의 칩플레이션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요지는 CXMT 같은 중국산 메모리를 사서 당장 비용을 낮출 수는 있지만, 그 대신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게 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앞서 언급한 미 상원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애플에 중국산 메모리를 쓰지 말라는 서한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미국 정치권 안에서는 이미 "CXMT는 값싼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리스크"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CXMT의 베이징 신공장 계획, 월 생산능력을 30만 장에서 60만 장으로 늘리겠다는 그 계획도 순수하게 기술과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워싱턴의 태도 하나로 언제든 제동이 걸릴 수 있는 계획이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 이번 수출 규제 강화를 앞두고 CXMT가 미리 장비를 대량으로 사들여 올해 생산 계획에는 차질이 없지만, 2026년 이후 생산능력 확장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거라는 전망이 나무위키에도 정리돼 있었다.
6. 반도체만 잘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경고도 있었다
이번에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같은 한국경제신문에 실렸던 다른 칼럼도 함께 보게 됐다. 신진영 연세대 교수가 쓴 글인데,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5월 "일본, 한국, 대만이 산업적 쇠퇴를 앓고 있다"는 제목으로 낸 경고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 세 나라의 수출 호조가 AI 반도체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이고, 반도체를 뺀 자동차·화학·기계 같은 전통 산업은 중국의 기술력 향상과 공급 과잉 속에 이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김정태 칼럼이 말한 '산으로 가지 않는 법'의 범위를 나 스스로 더 넓혀야겠다고 느꼈다. 반도체 안에서 정치적 개입만 걷어낸다고 산으로 가지 않는 게 아니다. 반도체 호황이 다른 산업의 침체를 가려주는 착시를 만들고 있다면, 그 착시가 걷혔을 때 드러날 민낯까지 함께 봐야 진짜 그림이 완성된다.
7. 내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다시 정리하면
나는 반도체주만 오르는 장세를 지켜보다 참지 못하고 삼성전자를 매수했고, 지금은 손실을 보고 있다. 그때는 단순히 "남들 다 버는데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조급함이 컸는데, 이번에 CXMT를 파보면서 생각이 훨씬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CXMT는 HBM 격차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으니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 매출을 당장 잠식할 상대는 아니라는 게 우선 확인됐다.
다만 범용 D램 가격에는 실질적 압박을 줄 수 있는 규모로 이미 커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CXMT 자체 주가가 PER 1600배짜리 버블 성격이 강하다는 걸 보면, 이 회사가 계획대로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릴 자금과 시간을 실제로 확보할 수 있을지부터가 미지수다. 그 확장 속도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도 결국 CXMT의 기술력이 아니라 워싱턴의 수출 통제 강도라는 걸 알고 나니, 이 회사를 당장 두려워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변수에 따라 언제든 궤도가 흔들릴 수 있는 대상으로 다시 보게 됐다.
40년 전 협정에서 한국이 반사이익을 봤던 구도를 그대로 믿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도 이번에 새로 깨달은 부분이다. 이번엔 우리가 견제받는 쪽에 설 수도 있는 위치라서다. 최태원 회장의 발언을 원문으로 다시 읽고 나니, 지금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정말 조심해야 할 건 노조나 정치권이 아니라 스스로 가격을 너무 높게 방치해서 각국 정부가 대안을 찾도록 만드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칼럼 제목처럼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필요한 건 정치권의 자제만이 아니다. 투자자인 나도 HBM이라는 성벽 뒤에 숨어 안심하지 말고 범용 D램 가격, CXMT의 밸류에이션, 미국의 태도 변화까지 함께 체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조급하게 반응할 시점은 아니지만,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이 세 가지는 계속 같이 들여다볼 생각이다.
#CXMT #창신메모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반도체 #D램 #칩플레이션
직접 읽은 기사
[김정태 칼럼] K반도체가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한국경제신문 2026.08.03 A31면, 기사 링크
참고 자료
CXMT 항목, 나무위키, 링크
미일 반도체 협정 항목, 나무위키, 링크
창신 메모리 테크놀로지 항목, 위키백과, 링크
[단독] CXMT 증권신고서 해부…30% 싼 D램으로 삼성·하이닉스 물량 뺏는다, 뉴스핌 2026.07.21, 링크
"中 CXMT, 베이징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 추가 건설 추진", 파이낸셜뉴스 2026.08.03, 링크
세계 4위 '中 CXMT' 삼전닉스 추격 본격화…6.5조원 투자 승부수, 서울신문 2026.07.12, 링크
CXMT 매출 700% 급증 및 상장 당일 메모리 3사 동반 하락 보도, Moneywise(FT 인용), 링크
China Is Not the Solution to the US Chipflation Problem, Chris Miller, AEI, 링크
최태원 "내년 반도체 공급 '아비규환' 우려…공급 늘려 가격 떨어뜨리는 게 생명줄", 경향신문 2026.07.19, 링크
반도체 착시 극복하려면, 신진영 연세대 교수, 한국경제신문 2026.07.22,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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