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요즘 AI 기사는 솔직히 좀 피로하다
아침마다 조선일보랑 한경을 펼치면 거의 매일 AI 얘기가 나온다. 처음엔 흥미로웠는데 이게 몇 달째 반복되니까 이제는 헤드라인만 봐도 "또 AI네" 하고 넘기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 오늘은 넘길 수가 없었다. 조선일보 B1에 실린 기사 제목이 [엔비디아, 월가 5000억 달러 금융동맹 - AI투자 지원]이었는데, 옆에 붙은 부제가 눈에 걸렸다. 주담대처럼 GPU를 담보로 대출을 해준다는 얘기였다.
AI 반도체 얘기, AI 데이터센터 얘기는 지금까지 숱하게 봐왔지만 "GPU가 담보물이 된다"는 문장은 처음 봤다. 그래서 한경도 같이 찾아봤더니 1면 하단에 똑같은 소식을 다루면서 제목을 아예 [순환금융 확장판 - 엔비디아, 월가와 AI동맹]이라고 붙여놨다. 두 신문이 같은 사건을 두고 하나는 '금융 동맹'이라 부르고 하나는 '순환금융'이라 부르는 걸 보면서, 이게 단순히 또 하나의 AI 투자 뉴스가 아니라는 감이 왔다.
2. 젠슨 황이 은행이 됐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엔비디아가 골드만삭스, 블랙록, 블랙스톤, 아폴로글로벌, 브룩필드, KKR까지 월가 대형 금융회사 여섯 곳과 손잡고 5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00조 원 규모의 자금 조달망을 만들기로 양해각서를 맺었다. 이름하여 '컴퓨팅 금융 플랫폼'이다.
구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집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듯이, GPU가 앞으로 AI 서비스에서 벌어들일 수익을 담보로 잡아서 돈을 빌려주는 거다. 자금이 부족한 AI 스타트업이나 클라우드 업체들이 이 돈을 받아서 엔비디아 칩을 산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자기 돈을 직접 쓰지 않고도 고객의 구매력을 키워주는 셈이니, 칩 판매량은 그대로 늘어난다.
개인적으로 제일 눈에 들어온 대목은 따로 있었다. 엔비디아가 구형 GPU의 가치 하락 위험을 일부 떠안아서 최대 25%까지 잔존가치를 보상해준다는 부분이다. 쉽게 말하면 중고차 시세가 떨어질 걸 대비해서 제조사가 일정 부분 보증을 서주는 것과 비슷하다. 이 정도면 단순히 파트너십이 아니라 엔비디아가 금융회사 역할까지 자처하고 나선 거라고 봐야 한다.
3. 다들 불안해하는 이유 -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돈
사실 엔비디아가 고객사에 돈을 대주는 방식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AI 모델 개발사, 코어위브 같은 클라우드 업체에 지분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이미 자금을 지원해왔다. 문제는 그 돈이 결국 엔비디아 칩을 사는 데 다시 쓰인다는 점이었고, 여기서 '순환 거래' 논란이 계속 따라붙었다.
이번 금융 플랫폼은 그 구조에 월가라는 제3자를 하나 더 끼워 넣은 모양새다. 엔비디아가 직접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월가 자본을 연결해주는 역할만 한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결국 그 돈의 상당 부분이 엔비디아 칩 구매로 흘러가는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주요 클라우드 업체들의 AI 인프라 투자액을 1조 1400억 달러로 추산했고, 블랙록은 2030년까지 필요한 미국 내 AI 인프라 투자 규모를 4조 2000억 달러로 봤다. 숫자가 너무 커서 감이 잘 안 오는데, 이 정도 규모의 돈을 개별 기업이 자기 곳간에서만 조달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시장의 반응도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발표 다음 날 엔비디아 주가는 오히려 2.86% 하락 마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구조가 순환금융에 따른 위험을 더 키울 거라고 지적했고, 액시오스는 한 기업이 흔들리면 그 충격이 AI 생태계 전체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젠슨 황은 엔비디아는 플랫폼만 제공할 뿐 투자자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한다고 반박했지만, 담보로 잡힌 자산이 다름 아닌 감가상각이 빠른 반도체라는 점에서 이 반박이 완전히 안심되는 얘기는 아니었다.
4.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 한 달 전에도 같은 얘기가 있었다
이 대목에서 찜찜해서 지난 한 달 기사를 좀 뒤져봤다. 그랬더니 이번 월가 동맹이 사실 갑자기 튀어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불과 2주 전인 7월 말에도 비슷한 성격의 뉴스로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 만에 5% 가까이 빠지면서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애플에 내준 적이 있었다. 당시엔 엔비디아가 오픈AI에 2500억 달러 규모의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가 트리거였다.
뜯어보면 구조가 이번 건과 결이 비슷하다. 소프트뱅크 자회사가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짓는 10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 임차 계약에 엔비디아가 최대 2500억 달러까지 보증을 서주고, 별도로 오픈AI가 엔비디아 칩을 사는 데 필요한 자금 3500억 달러도 지원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됐다. 여기에 SK그룹과도 5000억 달러 규모의 AI 동맹이 거론되면서 총 거래 규모가 75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당시 엔비디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그러니까 이 회사 채권이 부도날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료 성격의 지표도 0.14%포인트 뛰어올랐다. 시장이 말로만 걱정한 게 아니라 가격으로도 반응했다는 뜻이다.
더 눈에 걸리는 건 다른 빅테크들의 재무 상태다. 오라클은 AI 투자 수익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정크 바로 위 단계까지 강등됐고, 알파벳은 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메타는 블랙록과 함께 데이터센터 전용 특수목적법인을 만들어 125억 달러 규모 채권을 발행했고, 앞서 블루아울캐피털과도 별도 법인으로 300억 달러를 조달한 적이 있다. 코어위브 역시 엔비디아 GPU와 장기 고객계약 자체를 담보처럼 활용해 약 300억 달러를 끌어왔다. 결국 이번 8월의 월가 금융 플랫폼은 완전히 새로운 실험이 아니라, 7월부터 하나씩 등장했던 개별 딜들을 하나의 공식 플랫폼으로 묶어서 규모를 더 키운 버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경이 이번 기사 제목을 굳이 '확장판'이라고 붙인 이유도 이런 맥락이었을 거다.
5. 담보물 자체가 흔들린다 — GPU 감가상각을 둘러싼 논쟁
순환거래 논란보다 개인적으로 더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다. 지금 이 모든 대출과 채권의 담보로 잡히는 자산, 즉 GPU 자체의 가치를 둘러싼 논쟁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를 예견해 유명해진 헤지펀드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지난해 말부터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구글,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들이 서버·네트워크 장비의 회계상 내용연수를 3년에서 5~6년으로 늘려 잡으면서 감가상각 비용을 실제보다 적게 계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리의 계산에 따르면 엔비디아 GPU의 실제 제품 주기는 2~3년에 불과한데 이를 5~6년짜리 자산처럼 처리할 경우, 구글·오라클·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등 그가 지목한 빅테크들을 합산했을 때 2026년부터 2028년 사이 감가상각 비용이 약 1760억 달러 정도 적게 잡힐 수 있다고 한다. 이 논리대로면 2028년 기준 오라클의 이익은 26%, 메타의 이익은 20% 가까이 부풀려진 셈이 된다. 영국 바클레이스도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알파벳·메타·아마존 세 곳의 장비 내용연수를 3년으로 낮춰 계산하면 주당순이익이 5~10% 줄어들 수 있다고 추산했다. 물론 회계 부정을 단정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고, AI 반도체가 클라우드나 과학 시뮬레이션 등 다른 용도로도 오래 쓰일 수 있다는 재반박도 있다.
이 논쟁이 오늘 기사와 왜 연결되는지 생각해봤다. 만약 GPU의 실제 수명이 정말 2~3년이라면, 그 GPU를 담보로 5년, 10년짜리 대출을 설계하는 지금의 금융 구조는 처음부터 담보 가치를 과대평가한 채 시작하는 셈이 된다. 집값이 꾸준히 우상향한다는 전제로 설계됐던 주택담보대출 증권화와, 몇 년 뒤면 구식이 될 반도체를 담보로 설계되는 이번 구조를 나란히 놓고 보니 어느 쪽이 더 위태로운 전제 위에 서 있는지 쉽게 답이 안 나왔다.
6. 같은 지면에서, 중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A1에서 예고만 하고 넘어간 얘기가 한경 A5에서 풀렸는데, 이 지면 자체가 흥미로웠다. 제목이 [中은 대출금리 인하, 美는 칩 담보대출허용… AI 돈줄 터주기 총력]이었다. 별도 기사가 아니라 미국편과 중국편을 한 지면에 나란히 묶어놓은 구성이었다. 미국 쪽은 지금까지 정리한 엔비디아·월가 얘기 그대로였고, 중국 쪽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중국은 1979년 개혁개방 이후 금융 분야만큼은 철저히 국가가 틀어쥐고 있던 나라다. 그런데 그 대출우대금리(LPR)가 14개월째 동결된 상황에서, 첨단기술과 전략산업에 한해서는 환매조건부채권금리(DR)에 연동한 대출을 새로 열어줬다.
숫자로 보면 차이가 꽤 크다. DR 연동 대출의 1년 금리는 연 2%대 중반인데, 일반 LPR 기준 1년 대출은 연 3%다. 이 혜택을 받는 곳은 첨단기술, 화학, 바이오, 에너지 업종에 한정돼 있고, 지금까지 이뤄진 21건의 대출도 전부 이 범위 안에 있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금리 결정권 일부를 시장에 열어주면서까지 특정 산업에만 특혜성 자금을 몰아주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내가 이 기사를 그냥 넘길 수 없었던 진짜 이유가 나온다. 미국은 GPU라는 자산을 유동화해서 새로운 자금을 만들어내고 있고, 중국은 아예 금리 자체를 낮춰서 특정 산업에만 돈을 몰아주고 있다. 방식은 정반대인데 도착지는 같다. 두 나라 모두 결국 AI에 실탄을 계속 대주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 보면서 지금의 AI 경쟁이 기술 경쟁이자 동시에 자금 조달 경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7. 그런데 실물 지표는 또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거품 얘기만 늘어놓고 끝내기엔 걸리는 게 있어서 반대쪽 자료도 찾아봤다. 순환금융이니 감가상각 논쟁이니 하는 건 결국 회계와 금융 구조에 관한 얘기고, 실제 메모리 반도체 수요 지표는 아직 꺾일 기미가 안 보였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루빈'에 들어가는 6세대 HBM인 HBM4는 원가 부담이 기존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데도, AI 투자가 계속 확대되는 덕에 GPU 제조사들이 그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루빈의 대당 가격은 7만8000~8만 달러 수준으로 예상되는데, 이 정도면 GPU 제조사가 75~80%대 매출총이익률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계산이다.
이 흐름의 수혜는 고스란히 HBM 공급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이어진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집계 기준으로 두 회사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합계는 657조 원을 넘고, 2027년에는 941조 원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자릿수를 잘못 본 줄 알았는데,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이 72%까지 나왔다는 걸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메모리값이 계속 오르면서 두 회사 모두 원가 대비 판매가가 비정상적으로 벌어지는 슈퍼사이클을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순환금융이나 감가상각 논란이 자본시장 쪽에서 벌어지는 신뢰의 문제라면, HBM 수주와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반도체 업황이라는 현물 쪽에서 벌어지는 문제다. 지금은 이 두 축이 서로 다른 방향의 신호를 동시에 내고 있는 셈이다.
8. 그래서 내 계좌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계좌에서 지금 제일 신경 쓰이는 종목은 삼성전자다. 반도체 랠리가 한창일 때 FOMO로 들어가서 지금 손실 구간에 있는 종목이라 이런 뉴스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 종목부터 떠오른다. 자금 조달 통로가 새로 하나 더 뚫렸다는 건 결국 GPU 판매가 당분간 급격히 꺾이지는 않을 거라는 신호로도 읽힌다. GPU 판매가 늘어나면 그 뒤에 붙는 HBM 수요도 같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 밸류체인 어딘가에는 삼성전자가 있다. 앞서 본 영업이익 컨센서스만 보면 당장 밸류체인이 무너질 상황은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근데 동시에 이건 딱 그만큼의 불안 요인이기도 하다. 담보로 잡힌 게 부동산이 아니라 마이클 버리 말대로 2~3년이면 구형이 되는 반도체일 수 있다는 점, 그 담보 가치를 보장해주는 주체가 다름 아닌 판매자인 엔비디아 자신이라는 점은 아무리 봐도 걸린다. 손실 중인 계좌를 붙잡고 이 기사를 읽고 있으니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SKT도 마찬가지다. 원래 양자컴퓨팅 관련주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간 종목인데, 이후 AI 데이터센터와 주권 AI 이슈가 붙으면서 이런 자금 조달 뉴스와도 완전히 무관하지 않은 자리에 서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기사를 읽고 나서도 답을 내리진 못했다. 자본시장 쪽 신호(순환거래, 감가상각 논쟁, CDS 프리미엄)와 실물 쪽 신호(HBM 수주,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지금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꺾이느냐에 따라 앞으로 몇 년의 방향이 갈릴 것 같다. 미국도 중국도 결국 같은 방향으로 돈을 밀어넣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해 보여서, 당분간은 이 흐름을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엔비디아 #GPU담보대출 #순환금융 #AI버블 #마이클버리 #HBM #삼성전자 #SK텔레콤 #중국대출금리
직접 읽은 기사
조선일보 B1 - 엔비디아, 월가 5000억 달러 금융동맹 - AI투자 지원 (2026.08.12)
한국경제 A1 - 순환금융 확장판 - 엔비디아, 월가와 AI동맹 (2026.08.11)
한국경제 A5 - 中은 대출금리 인하, 美는 칩 담보대출허용… AI 돈줄 터주기 총력 (2026.08.11)
참고 자료
경향신문 - 다시 점화되는 엔비디아발 '순환 거래' 우려 (2026.07.28)
머니투데이 - 엔비디아 오픈AI 지급보증 순환거래 우려, 시총 1위 내줘 (2026.07.28)
한국경제 - 빅테크의 GPU 수명 조작은 사기…또 불거진 거품론 (20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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