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자 한국경제를 폈다. A14면 머리기사에 낯선 알파벳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AX. DX(디지털 전환)는 익숙한데 AX는 처음 보는 표현이라 잠깐 멈춰 섰다. 찾아보니 AI Transformation, 즉 AI 대전환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같은 날 A24면에 실린 또 다른 AX 기사였다. 하나는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시상식 기사였고, 하나는 경남 창원 호텔에서 열린 협의체 출범식 기사였다. 같은 세 글자를 쓰는데 무대가 완전히 달랐다. 이 두 기사만 보고 넘어갔다면 그냥 'AI 관련 행사가 두 개 있었네' 정도로 끝났을 텐데, 궁금해서 관련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이 시차가 한국 두 지면 사이의 우연이 아니라 전 세계 데이터로도 확인되는 구조라는 걸 알게 됐다.

1. 여의도의 AX — 회의실의 언어
A14면 기사는 한경닷컴과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주관한 '2026 한경 AX 서밋'과 '대한민국 AX 대상' 시상식을 다뤘다. 카카오의 한 임원은 기조연설에서 AI를 업무에 쓰는 수준을 넘어 일하는 방식 자체를 AI 중심으로 다시 짜야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딜로이트 파트너가 인용한 통계가 개인적으로 제일 눈에 밟혔다. 기업의 88%가 어떤 형태로든 AI를 쓰고 있지만, 전사적으로 도입한 곳은 7%에 불과하다는 숫자였다. 반도체 부품업체 원익그룹을 예로 들면서, AI를 잘 아는 '키맨'을 여러 명 키우는 게 확산의 관건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네이버는 AI 검색 도입으로 검색 소요 시간이 평균 75% 줄었다고 밝혔다. 이날 대상은 농기계업체 대동과 이랜드이노플이 받았고, NH농협은행과 디지털대성이 금상을, 분야별 최우수상은 FSN·네이버페이·롯데쇼핑·미래에셋증권·한세실업이 나눠 가졌다. 전반적으로 이 기사는 이미 AI를 실적으로 증명한 기업들, 그리고 그걸 평가하는 컨설팅펌의 언어로 채워져 있었다.
2. 창원의 AX — 공장의 언어
A24면 기사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경상남도가 창원 호텔인터내셔널에서 '경남 스마트 제조 인공지능 전환 민·관 협의체' 출범식을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피지컬 AI란, 챗GPT처럼 화면 속 언어로만 존재하는 AI가 아니라 로봇·제조 설비·자동차처럼 물리적인 하드웨어와 결합해 현실 세계를 실제로 움직이는 AI를 뜻한다. 제조 기업과 기술 공급 기업을 연결해 수요 발굴부터 실증, 사업화, 사후 관리까지 전 주기를 지원하겠다는 게 협의체의 골자였다. 도내 제조업의 이 피지컬 AI 전환을 위해 실증 산업단지를 준비 중이고, 오는 9월에는 경남 제조 AI 데이터센터를 새로 연다고 한다. 담당 과장은 경남을 세계적인 피지컬 AI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 기사에는 '전사적 도입률 7%' 같은 숫자도, 시상식도, 컨설팅펌의 진단도 없었다. 대신 있는 건 '이제 막 시작한다'는 시제였다.
3. 이 시차, 사실은 전 세계 공통이었다
두 기사를 읽고 나서 딜로이트가 올해 발표한 'State of AI in the Enterprise 2026' 보고서를 찾아봤다. 지난해 8~9월 24개국 6개 산업 임원급 3,2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인데, 여의도 기사에 나온 국내 통계와 정확히 같은 모양의 간극이 전 세계 단위로도 나타나 있었다.
3-1. 매출까지 이어지는 성과는 20%뿐
이 보고서에 따르면 AI로 매출 성장을 기대한다고 답한 기업은 74%였는데, 실제로 매출이 늘었다고 답한 기업은 20%에 그쳤다. 54%포인트짜리 간극이다. 반면 생산성·효율성이 좋아졌다는 응답은 66%로 가장 흔한 성과였다. 정리하면, AI는 이미 비용을 줄이는 도구로는 꽤 자리를 잡았지만 매출을 만들어내는 도구로는 아직 소수 기업만 성공했다는 뜻이다. 여의도 기사의 '88% 대 7%'와 이 '74% 대 20%'는 숫자는 다르지만 구조는 같다. 쓰고는 있는데, 아직 성과로 이어진 곳은 훨씬 적다는 것. 이 숫자를 보면서 솔직히 조금 안도했다. 내가 회사 업무에 AI를 이것저것 써보면서도 아직 뭘 어떻게 성과로 연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던 참이었는데, 전 세계 대기업 리더들도 딱 그 지점에서 막혀 있었다.
3-2. 피지컬 AI는 '쓴다'와 '바꾼다' 사이 간극이 9배
더 흥미로운 건 창원 기사와 직접 맞닿아 있는 피지컬 AI 쪽 수치였다. 같은 조사에서 전 세계 기업의 58%가 이미 피지컬 AI를 어느 정도 활용하고 있고, 2년 안에 80%까지 늘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딜로이트 아시아·태평양이 별도로 낸 조사를 보면, 피지컬 AI가 '지금 당장 자기 산업을 바꾸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5%에 불과했다. 기존 AI·머신러닝에 대한 같은 질문의 응답률(45%)과 비교하면 9배 차이다. 대신 3년 안에는 변혁이 올 거라고 기대하는 비율은 41%였다. 지금의 5%와 3년 뒤 기대치 41% 사이, 36%포인트의 간극이 바로 창원 협의체가 채우려는 그 공백이다. 걸림돌로는 비용·자원 부담(41%), 어디에 적용할지 모르겠다는 유스케이스 문제(36%), 인력·기술 격차(33%) 순으로 꼽혔다. 소프트웨어의 오류는 재시도 한 번으로 끝나지만, 공장 설비의 오류는 수십억 원짜리 라인 손실이나 인명 사고로 직결될 수 있다. 제조 현장이 다른 업종보다 유독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창원 협의체가 아직 '이제 막 시작한다'는 시제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걸림돌 목록을 읽고 나서야 A24면 기사가 왜 그렇게 조심스러운 톤이었는지 이해가 갔다. 화려한 수치를 못 내놓은 게 아니라, 애초에 이 단계에서는 낼 수 있는 수치 자체가 없는 것이었다.
4. 그런데 한국은 이미 돈을 쏘고 있었다 — 다만 단계가 다르다
여기까지 보고 나니 창원 기사가 지역 단위의 고립된 이벤트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지난 7월 1일 금융위원회와 산업통상부는 국민성장펀드의 'M.AX 프론티어 프로젝트'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국민성장펀드 공급분 30조 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6조 원을 AI·로봇·미래차·방산·반도체·이차전지 등 피지컬 AI 관련 분야에 투입하고, 향후 5년간은 최대 150조 원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다. 산업부는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산학연 1,500여 개 기관이 참여하는 'M.AX 얼라이언스'를 통해 제조 현장의 AI 전환을 지원해왔다. 여기까지 찾아보고 나서야, 창원 기사 하나만 읽었을 때는 몰랐던 그림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지역 협의체 하나가 아니라, 국가 단위 자금이 이미 움직이고 있는 큰 판의 일부였다는 것.
다만 발표 내용을 자세히 보면 단계가 확실히 갈린다. 실제로 자금이 집행된 곳은 LS전선 한 곳뿐이다. 초고압 해저케이블 공장 증설 사업에 국민성장펀드가 총사업비 1,600억 원의 절반인 800억 원을 저리 대출해주는 안건이 6월 25일 승인됐고, 이게 국민성장펀드의 '1호 M.AX 투자 프로젝트'다. 그 외에 두산로보틱스·원익로보틱스(로봇), CJ대한통운·이수페타시스·대성하이텍(AI팩토리), 현대모비스·LX세미콘·매그나칩반도체(미래차·반도체) 등 8개 기업은 이날 간담회에 참석해 이름을 올렸을 뿐, 자금이 배정됐다는 발표는 아직 없다. 발표 직후 관련 종목과 피지컬 AI 테마 ETF가 이미 반응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정책 발표 자체가 시장 가격에 어느 정도 선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이 발표에서 정부가 로봇 생산거점으로 언급한 지역은 새만금·대구·경북이다. 창원이 속한 경남은 이번 16조 원 프로젝트에서 공식적으로 지목된 거점이 아니다. 즉 창원 협의체와 국민성장펀드는 '피지컬 AI 확산'이라는 같은 흐름 위에 있는 건 맞지만, 서로 다른 사업이고 아직 직접 연결된 자금은 없다.
5. 그래서 뭘 봐야 하나
정리하면 이렇다. 확실하게 자금이 들어간 곳은 LS전선 하나뿐이고, 나머지 8개 기업은 정책 방향에 이름이 올라간 후보군일 뿐 확정된 수혜는 아니다. 창원 협의체는 이 국가 단위 프로젝트와 결이 같은 지역 버전이지만, 아직 그 16조 원과 직접 묶인 사업은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 따로 확인해야 할 지점은 두 가지로 남는다. 하나는 9월 경남 제조 AI 데이터센터 개소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성장펀드가 이 8개 후보 기업 중 다음 집행 대상을 어디로, 얼마나 발표하느냐다.
기사 두 개를 나란히 읽기 전까지는 AX라는 말을 그냥 DX의 다음 버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여의도와 창원의 온도차를 확인하고, 그 온도차가 딜로이트의 74%·20%·58%·5%라는 숫자들과 그대로 겹친다는 걸 보고 나니, 이게 한 지면의 우연이 아니라 지금 AI 대전환이 통과하고 있는 하나의 구조적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확인해야 할 건 화려한 시상식 뉴스가 아니라, 16조 원이 실제로 어디로 흘러가고 9월에 창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인 것 같다.
#AX #AI대전환 #피지컬AI #스마트팩토리 #국민성장펀드 #M.AX얼라이언스 #AI확산곡선
직접 읽은 기사
한국경제 2026.07.08자 지면 A14면, "AI 중심으로 모든 업무 재설계해야 생존" (기사 링크)
한국경제 2026.07.08자 지면 A24면, "경남, 제조현장에 AI 입힌다…AX 민·관협의체 첫발" (기사 링크)
참고 자료
딜로이트, 'State of AI in the Enterprise 2026' 글로벌 설문 — 한국데이터경제신문 2026.04.25자 (기사 링크), 2026.04.28자 (기사 링크) 보도 참고
파이낸셜뉴스 2026.07.01자, "AI로 제조업 대전환… 로봇·반도체 등 6개분야에 16兆 푼다"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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