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침에 본 기사 한 줄, 남 얘기가 아니었다
7월 8일 한국경제 A5면에 실린 기사 제목을 보고 한참을 멈춰 섰다. "경비 1명 뽑는데 170명 지원." 서울의 한 인력파견업체 대표가 전한 말이 특히 눈에 밟혔다. 대형 증권사 경비원 한 자리에 170명이 몰렸고, 그중엔 대기업 출신과 석사급 지원자가 즐비하다는 내용이었다.
2차 베이비붐 세대, 그러니까 1964~1974년생 954만 명이 순차적으로 정년퇴직 연령에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숫자를 보다가 손이 멈췄다. 재취업한 중고령층 4명 중 1명이 경비·청소·운수 같은 단순 서비스 분야로 흘러들어간다는 대목이었다. 평생 쌓은 경력,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의 경험이 은퇴와 동시에 리셋되고, 화단 관리와 재활용 분류 같은 업무로 재배치된다는 얘기다. 남 얘기로 읽히지 않았다.
2. 인생 3분의 2 지점에서 벌어지는 '재분류'
요즘 평균수명이 90세를 넘어가는 추세를 생각하면, 60세 은퇴는 사실 인생의 끝이 아니라 3분의 2 지점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예전에는 60~70대까지 살면 오래 살았다는 말을 들었으니 은퇴 이후의 삶이 짧았고, 그만큼 문제도 작았다.
지금은 다르다. 60세에 은퇴한 사람이 90세까지 산다면, 은퇴 이후의 시간이 무려 30년이다. 첫 인생의 근무 기간과 맞먹거나 그보다 길 수도 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은퇴가 '끝'이 아니라 '재분류'라는 것이다. 관리직·사무직으로 30년을 일했더라도, 은퇴하는 순간 노동시장은 그 사람을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로 다시 분류한다.
은퇴 후 재취업 시장에서 직군별 재취업률을 보면 이 역설이 뚜렷하다. 주된 직장에서 관리직이었던 행정·경영·금융보험 관리자의 재취업률은 58.3%, 사무직인 경영지원 사무원은 58.7%로 전체 평균(63.7%)보다 낮다. 반면 보육교사·사회복지 종사자는 74.7%, 식당 서비스원은 71.7%로 오히려 재취업이 잘 된다. 전문성이 높았던 직군일수록 재취업 시장에서는 오히려 설 자리가 좁아지는 역설이다.
이 인구구조 문제는 예전에 다뤘던 30대 인구 급감과 서울 집값 이야기와도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3. 5단계로 무너지는 임금 계단
더 무서운 건 숫자로 확인되는 임금의 하강 곡선이다. 재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50~54세 456만 원에서 55~59세 393만 원, 60~64세 309만 원으로 떨어진다. 65~69세엔 236만 원, 70세 이상은 195만 원까지 내려간다. 50대 초반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계약직 비중도 50~54세 14.3%에서 60~64세 46.8%로 급증한다. 정년 이후 재취업한 사람 절반 가까이가 기간제라는 뜻이다.
이걸 보면서 나는 이걸 '5단계 임금 계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한 계단씩 내려갈 때마다 소득이 뚝뚝 떨어지는데, 문제는 이 계단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나이라는 조건 하나만으로 강제된다는 점이다. 경력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그저 나이가 그 계단의 위치를 결정한다.
4. 정년을 늘리면 해결될까 —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소득 절벽의 해법으로 정년을 65세로 늘리자는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까지 높아졌지만 법정 정년은 60세에 머물러 있어 소득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법정 정년 60세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65세 사이에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이 생기고, 이 시기 노인빈곤율은 OECD 최고 수준인 38.2%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청년 일자리와의 충돌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정년연장의 예상 수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층 고용은 약 0.2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국가데이터처의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취업자는 25만5000명 감소했고, 청년 고용률은 43.8%를 기록하며 2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음' 상태인 청년 인구도 7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이 시점에 고령층 고용을 법으로 더 늘리자는 얘기가 청년 세대에 곱게 들릴 리 없다.
노동계는 2033년까지 65세 정년을 완성하자고 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2036~2041년 사이 여러 안이 오가는 중이지만 여당과 야당, 경영계와 노동계 어느 쪽도 완전히 합의하지 못한 채 절충안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이 연간 30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이 논쟁은 누구 하나가 완전히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다. 고령층의 소득 공백도 현실이고, 청년의 취업난도 현실이다. 둘 다 진짜 문제인데, 정년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라는 게 이 기사와 여러 자료를 겹쳐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5. 일본은 정년을 안 올리고 어떻게 70세 고용시대를 열었나
여기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하나 있다. 일본은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억지로 끌어올리는 대신, 기업이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 중 하나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2006년부터 65세까지 계속고용을 의무화하고, 2020년부터는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도록 '노력 의무'를 부여하는 식으로 20년에 걸쳐 단계를 밟았다. 그 결과 일본 기업의 70% 이상이 정년을 올리는 대신 퇴직 후 재고용을 택했고, 이 방식으로 일본은 지금 '70세 고용시대'에 들어섰다.
일본이 이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년을 법으로 일괄 연장하면 호봉제 구조상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그대로 커지고, 그 부담은 결국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져 청년이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재고용 방식은 같은 사람이 계속 일하되 임금과 직무를 재조정할 여지를 남겨둔다. 일본 후생노동성 관계자도 정년을 법으로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 노사 합의를 존중하는 지금 방식이 낫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 모델도 완벽하지는 않다. 재고용 후 임금이 크게 깎이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65세 초과 근로자를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주·프리랜서로 분류해 고용보험 의무까지 피해가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한다. 정년을 강제로 올리지 않는 대신, 고용의 질이 낮아지는 방식으로 부담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결국 어느 나라든 이 문제에는 공짜 해법이 없다. 한국이 정년연장이냐 계속고용이냐를 놓고 씨름하는 사이, 일본의 사례는 '법으로 나이를 올리는 것'과 '고용의 질이 낮아지는 것'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를 미리 보여주는 참고서에 가깝다.
6. 결국 내 계좌로 돌아오는 질문
투자자 입장에서 이 흐름을 읽으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정년연장이든 계속고용이든, 국가가 마련하는 제도적 완충장치는 앞으로도 계속 지연되거나 절충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일본의 선례가 보여주듯 그 대가는 결국 임금 삭감이나 고용형태 변경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소득 공백을 메우는 마지막 책임은 결국 개인의 자산으로 돌아온다.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하고, 고용이 연장되더라도 그 대가가 임금 하락으로 돌아오는 구조라면, 배당주나 리츠처럼 정기적인 현금흐름을 주는 자산에 관심이 몰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은퇴 이후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자산을 미리 쌓아두는 것 외에는 답이 별로 없다.
954만 명이라는 숫자가 순차적으로 은퇴 연령에 들어선다는 건, 이들이 앞으로 몇 년 안에 '월급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수요가 어디로 몰릴지, 나는 계속 지켜볼 생각이다.
솔직히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남의 얘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나도 언젠가 이 계단 앞에 서게 될 거고, 그때 가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준비 없이 그 시점을 맞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조금 무서워졌다.
#정년연장 #베이비붐세대 #재취업 #소득공백 #국민연금 #고령화 #계속고용
직접 읽은 기사
한국경제 2026.07.08자 지면 A5, 기사 링크
참고 자료
파이낸셜뉴스 2025.12.26, 기사 링크
헤럴드경제 2026.06.22, 기사 링크
이데일리 2026.06 사설, 기사 링크
JIBS 2026.06.24, 기사 링크
헤럴드경제 2026.04.10 (日 70세 고용시대), 기사 링크
한국경제 2025.12.04 (日 정년 70세 추진),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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