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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다 짓겠다는 김용범, 그런데 원전주는 왜 하루 만에 고꾸라졌을까

by money-insight7 2026.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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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과 소형모듈원전을 상징하는 미니멀 일러스트, 배경에 주가 차트 라인이 흐릿하게 겹쳐진 모습

아침에 한국경제부터 펼쳤다. 7월 9일자 1면 톱기사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이었다. 8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나온 말인데, 요지는 이렇다. "신규 원전도 지역이 원한다면 다 지어야 한다", "닥치고 반도체 팹을 지어야 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저전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였고, 그 기저전력의 한 축이 원전이라는 얘기였다. 원전 확대,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눈이 갔던 건 표현의 강도 때문이었다. "지역이 원한다면 다 짓겠다"는 건 꽤 단정적인 문장이다.

그런데 같은 날 A18면에 실린 표를 보고 조금 멈칫했다. 김용범 실장 발언 다음 날 원전 관련주들의 등락률을 정리한 표였는데, 다섯 개 종목 가운데 네 개가 마이너스였다. 두 자릿수에 가까운 하락률을 보인 종목도 두 개나 있었다. 플러스는 딱 하나, 그것도 소폭이었다. 정책실장이 원전을 "가능한 만큼 다 짓겠다"고 말한 다음 날, 원전주 대부분이 빠진 것이다. 호재라고 쓰인 기사 옆에 하락률 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그림이 묘하게 낯설었다.

한국경제 2026년 7월9일자 A18면 지면 사진, 김용범 정책실장의 원전 증설 발언 다음날 두산에너빌리티 등 원전 관련주들의 등락률을 정리한 표

1. 같은 날 세 개의 기사, 방향은 하나였다

여기에 조선일보 A3면 기사까지 더하면 그림이 좀 더 뚜렷해진다. 한·미·일 3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제3국을 상대로 SMR(소형모듈원자로) 사업에서 협력하기로 하고,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SMR 협력각서(MOC)에 서명했다는 내용이었다. 표준화된 SMR 노형을 개발해 여러 나라에 공동으로 보급하고, 중국의 원전 수출 확대를 견제하자는 취지다. 미국 국무부는 SMR 인력 양성에 1000만달러를 투입하겠다고도 밝혔다.

정리하면 이렇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원전을 최대한 짓겠다고 하고, 외교부는 미국·일본과 SMR 협력각서까지 서명했다. 하루 사이에 국내 정책과 외교 라인에서 동시에 원전·SMR 확대 신호가 나온 셈이다. 그런데 정작 시장은 그 신호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어긋남이 오늘 글의 출발점이다.

2. 왜 호재에 주가는 빠졌을까 —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엔 '조작된 시장인가'라는 생각까지 갔다. 그런데 김용범 실장의 최근 행보를 다시 짚어보니 다른 설명이 더 그럴듯했다. 이번 발언이 시장에 던진 첫 번째 '충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2-1. 두 달 전, 말 한마디에 코스피가 출렁였다

지난 5월 12일, 김용범 실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로 코스피가 장중 8000선 문턱에서 5%대까지 폭락한 일이 있었다. AI·반도체 산업에서 나오는 초과 세수를 '국민배당금' 형태로 국민에게 환원하자는 취지의 글이었는데, 블룸버그가 이를 기업 초과이익 재분배 구상으로 해석해 보도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집중됐다. 이후 김 실장이 횡재세 개념이 아니라 정부 초과 세수를 어떻게 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고 해명하면서 낙폭은 상당 부분 만회됐지만, 그날 시장이 받은 충격 자체는 뚜렷하게 남았다.

이 일화가 이번 원전 발언과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연결선은 분명하다. 정책실장이라는 자리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걸 시장 참여자들이 한 번 학습한 것이다. 그것도 두 달 전에. 학습한 시장은 다음번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엔 또 무슨 파장이 있을까'를 먼저 따지고 들어간다. 원전을 다 짓겠다는 말 자체는 우호적인 뉴스였지만, 정책실장의 입에서 나온 단정적 발언이라는 형식 자체가 이제는 시장에 경계 신호로도 읽힐 수 있게 된 셈이다.

2-2. 신뢰가 깎인 발언은 무시당하는 게 아니라 되레 불안 재료가 된다

은행 잔고처럼 말에도 신뢰 잔고가 있다는 비유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다만 신뢰가 깎였을 때 시장이 보이는 반응이 '무시'는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5월 국민배당금 발언 때도 시장은 처음에는 고위 공직자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큰 변동성을 보였고, 이후 해명이 나오고서야 낙폭을 만회했다. 정말 발언을 흘려들었다면 애초에 코스피가 5%씩 흔들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원전 발언 다음 날의 하락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발언 자체를 무시한 게 아니라 오히려 예민하게 반응한 결과로 보는 게 맞다. 두 가지가 겹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첫째, 원전·SMR에 대한 기대감은 영덕·기장 부지 확정, 원전·화력 총동원 방침 등을 거치며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었다. 그 상태에서 나온 이번 발언은 구체적인 부지나 시기가 빠진 원론적 의지 표명에 그쳤고, 새로운 재료가 아니라는 게 확인되자 실망 매물이 나온 것이다. 둘째, 정책실장이라는 자리가 두 달 전 예고 없이 시장을 흔든 전례가 있다 보니, 이번 원전 발언 뒤에도 예산 배분이나 특정 기업 특혜 논란 같은 또 다른 정치적 변수가 따라붙을 수 있다는 경계심이 원전주 전반에 대한 조심스러운 매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신뢰가 깎인 발언은 조용히 무시당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자극하는 재료가 되어 주가를 흔든다는 것이다.

3. 원전주는 원래 실적보다 정치에 더 민감하게 흔들린다

사실 원전주가 정책 발언이나 정치 이슈에 실적보다 더 세게 반응한 전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체코 원전 수출 과정에서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계약 조건이 국회에서 공개되며 논란이 됐을 때, 한전기술·한전KPS·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이틀 연속으로 8% 안팎씩 빠진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증권가에서는 이 조건이 이미 예전부터 알려져 있던 내용이고, 이 회사들의 실제 기업가치 산정에는 변화가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즉 실적이나 수주 전망이 바뀐 게 아니라, 국회에서 정치적 공방이 벌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가가 급락한 것이다.

이번 김용범 실장 발언 다음 날의 하락도 같은 결의 사건으로 보인다. 원전이라는 산업의 펀더멘털은 그대로인데, 정책실장이라는 정치적 위치에서 나온 발언의 형식과 맥락이 주가를 흔든 것이다. 원전주를 들고 있다 보면 이런 패턴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겪게 되는데, 그때마다 실적표를 다시 열어보고 '펀더멘털은 그대로다'라고 되뇌는 게 습관이 됐다.

4. 두산에너빌리티, 올초에 사서 몇 년은 묻어둘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얘기가 남 일 같지 않다. 내 계좌와 아이 계좌 양쪽에 두산에너빌리티를 담은 게 올해 초였는데, 그때 이미 이건 몇 년은 묻어둬야 하는 종목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원전·SMR이 상용화되고 실적으로 확인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산 것이라 조급해하지 말자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원전·SMR 뉴스가 나올 때마다 오르내리는 걸 지켜보면서 계좌 잔고가 뉴스만큼 화답한 적은 드물었다. 원전 해체 시장이든, 영덕·기장 부지 확정이든, 이번 김용범 실장 발언이든, 뉴스 자체는 계속 우호적인데 주가는 그때그때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때마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A18 표를 보고서야 좀 정리가 됐다. 뉴스의 방향과 현금흐름이 실제로 발생하는 시점 사이에는 시차가 있고, 정책실장의 말이라는 형식 자체가 이미 한 번 신뢰를 깎아먹은 뒤라는 사정까지 겹치면, 아무리 좋은 뉴스라도 주가가 같은 속도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SMR은 공해도 거의 없고 미래 전력의 핵심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아직 상용화 단계가 아니고, 그것으로 실제 매출과 이익을 내는 회사는 없다. 한미일이 협력각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두산에너빌리티의 다음 분기 실적이 바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지금 시점의 원전·SMR 관련주는 '서사'는 이미 충분히 쌓였는데 '현금'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구간에 있는 셈이다. 보통 3년, 길게는 5년은 지나야 그 격차가 좁혀질 거라 생각하고 묻어두고는 있지만, 투자자로서는 그 시차만큼 고스란히 계좌의 변동성을 버텨내야 한다.

5. 그래도 이번 여름엔 진짜 확인할 수 있는 게 하나 생겼다

지난달 말 한 증권사 리포트를 보니 두산에너빌리티와 관련해 이번 7월 체코 원전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예정돼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만약 한국이 선정된다면 수주는 내년 초부터 실적에 반영될 수 있고, 여기에 폴란드 원전과 SMR 주기기 제작 물량까지 더해지면 내년부터는 연간 신규 수주 규모가 올해보다 한 단계 커질 거라는 전망이었다. 이건 정책실장의 원론적 발언이나 외교부의 협력각서와는 결이 다른 소식이다. 실제로 계약서에 도장이 찍히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름을 좀 다르게 보고 있다. 김용범 실장의 발언이나 한미일 SMR 협력각서는 '서사'를 다지는 뉴스였다면, 체코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는 그 서사가 실제 현금흐름으로 넘어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구체적인 이벤트다. 발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이런 계약 이벤트를 캘린더에 표시해두고 지켜보는 게 훨씬 덜 피곤한 방식이라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

#원전주 #두산에너빌리티 #SMR #김용범 #체코원전 #원전투자 #정책리스크

직접 읽은 기사

한국경제 2026.07.09자 지면 A1면, A18면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원전, 가능한 만큼 다 지어야'"

조선일보 2026.07.09자 지면 A3면 — "인태 SMR 시장에 한미일 공동 진출"

참고 자료

블룸버그 "코스피 5%대 급락 원인은 김용범 AI 국민배당금 제안" (머니투데이, 2026.05.12)

정치에 희생당한 원전주...증권가 "낙폭 과도" (오피니언뉴스, 2025.08.20)

두산에너빌리티, 체코 우선협상대상자 7월 발표 예정 — 증권사 리포트 (씽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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